그 다음 본 것은 성덕대왕 신종입니다. 일명 '에밀레종'이라고 불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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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그 유명한 '에밀레종'이야~


어렸을 때, 계몽사에서 나온 '한국사 이야기(10권)'를 재밌게 읽었습니다. 아마 지금 역사를 공부하는 건 그 때의 그 책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그 때 흥미롭게 읽었던 것이 에밀레종 전설이었어요. 거대한 종을 만드는 데, 정성어린 소리를 내기 위해서 보시된 아이를 넣게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 말이예요. 어머니를 갈구하는 아이의 마음이 소리에 전해져 '에밀레종'이라고 한다지요.

직접 종소리를 듣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종은 더이상 종이 아니라 전시물일 뿐이예요. 너무나 오랜 시간을 지나왔기에 깨질 염려가 있기 때문이죠. 한 해 마지막날 듣는 '재야의 종소리'로 대신할 수 밖에 없나봅니다.

이 종이 만들어진 것은 통일신라의 전성기인 신라 중대 시기가 끝나가던 8세기였어요. 아버지 성덕왕을 기리며 만든 것인데, 이렇게 거대한 불사를 진행한다는 것은 중대 시기가 끝나가면서 흐트러진 왕권을 추스리기 위한 목적에서였을거예요. 아니라다를까, 경덕왕의 아들인 혜공왕이 피살된 이후 신라는 왕권쟁탈전이 벌어지는 혼란 시대(신라 하대)로 들어서게 되지요.

또하나 재밌는 점은, 에밀레종을 지지하는 철심은 과거 에밀레종이 만들어질 때부터 있던 겁니다. 1970년대에 철심을 다시 만들어 달았지만, 얼마 못가서 종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휘어져버렸다고 해요. 현대의 공력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신라시대 장인의 손길을 여기서 느낄 수 있지 않나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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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밀레종' 앞에서... 열심히 무언가를 적는 아이가 기특하네요 ^^


박물관을 나오고 나니, 구름은 완전히 걷힙니다. 지나가는 비였나보네요.

다음에 향할 곳은 분황사와 황룡사지예요. 버스를 타고 가기엔 두번 갈아타는 등 애매한 곳입니다. 버스 운전기사에게 물어보니, 멀지 않으니 그냥 걸어가라고 하더군요.
경주평야를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1킬로는 족히 됨직한 거리를 계속 걸었습니다. 계속 걸어다녔던 탓인지 힘들긴 했지만, 너른 평야를 바라보며 걷는 맛이 좋더라구요.
20분여를 걸어 헤맨끝에 분황사에 도착했습니다.

분황사에는 분황사 탑이 있습니다. 선덕여왕 때 세워졌다고 전해지는...
크지만 웅장하다고 할수 없고, 투박하지만 못나보이지 않는 친근감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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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황사 탑. 석사자가 귀엽지요~?


분황사도 이 탑을 빼면 그리 넓은 절이지는 않아요. 하지만, 이 곳은 엄연히 선덕여왕에 의해서 세워진 왕찰(?)이지요. 분황사 탑을 세운 이유는, 거의 마지막 성골출신 국왕으로서 '여성'이라는 정치적 핸디캡을 안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절과 탑을 조성함으로써, 왕 자신이 건재함을 과시하려는 목적이겠지요. 당시, 왕이 곧 부처라는 '왕즉불' 사상이 유행했음을 생각한다면 이해되는 부분입니다.

소멸해가던 '성골' 왕통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여성임에도 왕위에 올랐지만, 그 아래 진골출신 귀족들의 견제가 심했었던가 봅니다. 그래선지 선덕여왕은 후사를 보지 못한채 오래 못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지요...

흔히, 중국은 벽돌로 만든 전탑, 우리나라는 석탑, 일본은 목탑이 유명하다고 하죠.
각각 그 지역에 맞는 재료로 탑을 만든 것인데, 처음에는 거대한 목탑의 형태로 석탑을 세우던지(백제 유물인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 전탑을 모방한 형태로 탑을 세웠어요. 분황사탑은 바로 그 후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지요.
초기에는 이렇게 전탑을 모방한 석탑을 세웠지만, 차츰 토착 재료로 자신만의 양식을 만들어가게 되었어요. 그것이 통일신라 시대의 고선사지 석탑, 감은사지 석탑을 거쳐 그 유명한 불국사의 석가탑에서 완성이 된 것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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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황사 탑 앞에서... 지친 기색이 역력합니다


분황사를 나와 바로 앞 황룡사로 향했습니다. 다시 비가 뿌려지는 스산한 날씨였어요.
동네마다 교회 십자가를 볼 수 있듯, 왕도 경주의 다운타운가였던 이곳은 많은 절이 있었어요. 분황사 맞은 편에는 지금은 불타서 없는 황룡사가 붙어 있었고요.

가장 위세가 컸던 시기를 뒤로 한채, 황룡사지엔 쓸쓸함만이 와서 감돕니다.
신라 3대보물 중 황룡사 9층 목탑과 장육존상(불상)이 있던 신라 최대규모의 국찰이었고, 고려시대까지도 존숭되던 절이었지만, 13세기에 몽골의 침입으로 불타게 되지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탑이라는 황룡사지 9층 목탑도 이 때 불타버리게 되는 데, 참 안타깝습니다.
몇년 전, 봄가뭄으로 인한 화재로 낙산사 동종이 불타버렸다는 어이없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어요. 과거로부터 이어진 것들을 잃어버리는 아픔이 얼마나 큰지, 후손들도 알아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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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초돌만이 이곳이 황룡사 9층목탑이었음을 보여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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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당 내 황룡사지 장육존상(불상) 터


더 돌아보고 싶었지만, 잔뜩 찌뿌려진 하늘에 해도 지는지 어느새 어둑해지기 시작합니다.
이튿날 돌아볼 곳은 불국사와 석굴암과 문무왕릉. 버스를 타고 가야하는 먼 거리입니다. 서둘러 버스를 타고 불국사 앞 모텔에 숙소를 정했습니다.
혼자 여행이라 방이 썰렁하네요. 맥주 한잔을 가볍게 하면서 피곤한 몸을 뉘였습니다.

(이제 두번째 날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Posted by 밝은 구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