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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29 군대간지 10년.

지난 9월 22일은 잊을수 없는 날이었어요.
군대간지 10년째 되는 날이었거든요. 98 - 7****152 이라는 군번으로 익숙해지던 시간들..
그런 날까지 기억하냐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그 시간이 삶에 미친 영향이 컸기에 잊지 못할 것 같아요.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시절의 억압된 기억들이 가끔 꿈으로 나타나는 걸 보면 말이지요.

2년 2개월의 단절. 군 생활은 제 삶에 아주 큰 영향을 준것 같아요. 좋든 나쁘든...
그간의 삶을 다시금 되돌아볼 계기가 되었지만, 한편으론 고된 일상과 폭력과 억압에 익숙해지는 시간이기도 했지요.

IMF로 집이 어려움을 맞았고, 쫓기다시피 입대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그 때 입대했던 사람들은 대개 그랬을거예요. 많은 이들이 군대 지원을 해선지, 훈련소 내무실은 정원을 초과한 사람들로 인해 관물대(일종의 캐비넷)마저 나누어써야 했거든요

입대하던 날, 친우나 주변인들의 배웅이 부담될까봐 혼자 입소를 했는데...
마을버스 차창으로 보이던 어머니의 눈물에 마음이 편치 않던 기억이 납니다.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가 새삼 짠하게 느껴졌어요. 이후에 군생활 하면서 참 많이도 불렀는데...

3일간 보충대에 머무른 후, 파주에 있던 **부대 신병교육대로 이송되었지요. 그것이 고된 군생활의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육공트럭에서 내리자마자 가해지던 조교들의 폭력... 맞지 않으려면 빨리빨리 움직여야했지요. 폭력과 함께 가해지던 욕설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습니다.
내무실에 들어가자마자 짐과 소지품 검사를 했어요. 감추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맞기 싫어서라도 모든 걸 까보여야했죠. 그날 밤, 무자비한 폭력을 보면서 공포도 전염된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로부터 6주간의 훈련병 생활이 시작되었어요.
빡센 훈련과 노동이 힘들었지만, 그만큼 힘들었던 건 외부 세계와 단절이었던 것 같아요. 전화도 할수 없었고, 신문과 텔레비젼도 볼 수 없었습니다. 편지만이 유일한 소통의 수단이었지요. 고된 시간들을 위로하던 건, 원초적인 본능, 식탐과 수면욕이었습니다.
군인들이 초코파이를 왜 좋아하는지 알것 같았어요. 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가 되어가면서, 차츰 그 생활에도 익숙해져갔습니다.

다행인 건, 훈련 기간 중에 추석을 맞이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어요. 그날엔 훈련이나 작업이 없었다는 것. '국군의 날'에는 건군 50주년이라고 과자를 푸짐히 먹을 수 있었습니다.
부대장이 개신교 신자였던지, 유독 저녁에는 개신교 행사가 많았어요. 교회 예배는 잠을 보충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게다가 먹을 것도 주니 더욱 빠질 수 없었어요. 어느 교회 청년부에서 공연을 온다 하면, 어여쁜 아가씨에 수많은 이들의 눈빛이 꽂히곤 했었지요.

부끄러운 얘기지만, 그 시기에 지독한 변비에 시달렸어요. 보름간이나 큰 일을 못볼 정도로... 한편으로는 소변을 참지 못하는 요실금 증세에 시달리곤 했어요. 내 몸을 내가 제어할 수 없다는 사실에 내 자신이 참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극한적 상황속에서의 스트레스 때문이었겠지요.

극한적 상황 속에선, 내 속에 감추어져 있던 또다른 '내 자신'이 표출되는 것 같습니다. 이게 여과없이 꺼내어진다는 점에서, 같은 내무실을 쓰는 동기들과는 절실한 감정을 공유하는 '전우'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쉽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되고 말아요.
아웅다웅 지내면서도, 6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아 떠날때 눈물로 헤어짐을 아쉬워하던 사람들이 내무실 동기들이었습니다.

6주간의 훈련소 생활은 힘들었지만, 다시 시작될 자대 생활에 비해서는 한결 나았습니다. 수많은 동기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초반에는 엄격하게 대하던 조교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풀어주곤 했었고요.
자대 배치를 받고 연천으로 이송될때는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젠 이등병 막내로서 다시 벅찬 일상이 시작될 것이었지요.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고 백일 휴가를 나왔습니다. 백일간의 군 생활은 길고, 5일간의 휴가는 짧았어요. (억압된 삶의 시간이 길다는 건 누구나 느끼는 것이겠지요.)
휴 가 이튿날 아침, 어머니가 나를 깨울 때 '이병~ ***(내 이름) !!'을 외쳤다지요. 한편으로는 우스우면서도, 내 자신이 군생활을 깊이 체득했음을 느낄 수 있었어요. 엉덩이를 땅에 붙이고 양말을 신는 것도,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는 것도 용인될 공간에 다시 와있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그간 당연한 것들을 제어당했던 것이죠. 어쩌면 하찮을 수도 있는 것이 계급과 짬밥을 구분하는 수단이 되었어요. 기나긴 군생활을 보내면서 하나 둘 풀리게 될 것들이었지만요...
타자의 입장에서는 우스운 것일지 모르지요. 하지만 우리가 속한 공간에서 규정하는 규율, 윤리라는 것도 어쩌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문득 해봅니다.

시린 가을바람을 맞고 나니, 10년전 그 때의 기억이 떠오르네요.

10년전 겨울, 자대배치를 받고 처음 했던 훈련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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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밝은 구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