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어 달 전에 남기려던 글이 이제서야 씌여지네요. 아무튼 오랜동안에 숙제였던 경주 답사기를 이번 기회에 마무리짓고자 합니다. 재밌게 읽어주세요....


아침 일찍 일어나 석굴암의 일출을 보던지, 불국사라도 들어가야겠다는 저녁의 다짐은 늦잠에 여지없이 무너져버렸습니다. 어제의 술기운 때문이었을까요...
8시가 다 되어 일어나, 서둘러 샤워를 하고 아침식사를 한 후 불국사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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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 일주문. 이제 부처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경주를 간다면 꼭 들러봐야 할 곳은 불국사와 석굴암이죠. 그만큼 불국사와 석굴암은 경주, 아니 신라 역사와 문화에 있어서 적잖은 위치를 차지한다고 봐야 할 거예요. 그 때문인지 다른 나라에서 온 듯한 관광객(특히 일본인)이 많았습니다. 어제 다녀왔던 대릉원, 월지, 박물관 등에 비해 훨씬 많은 사람이 와 있어서 그 인기를 확인할 수 있었어요. 사람이 많기 때문인지, 한적한 분위기에서 돌아보고 싶단 저의 마음은 단지 소망에 불과할 뿐이었지요.

불국사는 말 그대로, '부처의 나라'를 의미하지요. 모든 절이 어쩌면 부처의 나라이겠지만, '佛國寺'란 이름이 있는 데에는 부처의 나라를 만들고픈 당시 지배층의 마음이 스며들어 있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듭니다. 당시 신라에서 불교는 '왕즉불' 사상을 통한 왕권 강화의 수단이었고, 왕은 거대한 불사를 통해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곤 했어요. '부처의 나라'란, 다시 말하면 강력한 왕에 의해서 통치되는 국가이겠지요.

이는 불국사와 석굴암이 세워진 시기를 봐도 알 수 있어요. 이것들이 세워진 시기는 8세기 중후반, 즉 신라 중대 시기로서 통일이후의 신라가 그 힘을 과시하고 전제정치가 확립된 때였어요. 불국사와 석굴암을 보러 간다는 건, 통일신라 전성기의 찬란한 문화를 느낀다는 것이지요. 때문에 다른 어느 곳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러 온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주문(기둥이 하나뿐인)을 지나고 개천이 있는 다리를 건넙니다. 험악한 인상을 한 사천왕이 있는 문을 지나며 부처의 세계에 가까이 다가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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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 전경. 아침의 경쾌한 햇살이 좋습니다 ^^


사진에 전경을 담아보려 이곳 저곳을 옮겨다녔어요. 그러다가 찍은 사진인데,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봤던 불국사 전경이 생각나더라구요. 교과서의 사진을 찍었던 누군가도 바로 이 자리에 서 있었을테지요. 아침의 선선한 바람과, 건물에 반사된 강렬하지 않은 햇살이 경쾌하게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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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의 측면 석축


유홍준 선생께서 찬하여 마지 않았던 건물 측면의 모습입니다. 위로 오르는 경사를 따라 석축도 따라 올라가고 있어요.
대개 건물 앞에 놓여진 계단(연화 칠보교, 청운 백운교)을 따라 올라가야겠지만, 계단조차도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기에 막아놓았습니다. 옆 길을 따라 오르려는 데, 저와 같은 '목마른 사슴'들이 찾을 자그마한 약수터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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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함산 옥로수. 목마른 사슴이 되어 물을 마셨습니다


옥로수(玉露水). '옥이슬 물'인가요? 물맛이 참 시원하고 개운합니다.
물을 대충 축이고 석가탑과 다보탑이 있는 곳에 다다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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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보탑. 십원짜리 동전을 생각나게 하네요


원래 계단을 타고 오르면, 불국사의 본전(本殿)인 대웅전과 그 앞의 석가탑, 다보탑을 마주하게 됩니다. 석가탑과 다보탑은 각각 석가여래와 다보여래를 의미하는 것이예요. 다른 모습의 부처 둘이 서 있는 셈이죠.

석가탑과 다보탑 중에서 어떤 게 더 이쁘냐하고 물어본다면 아마 대다수의 사람은 다보탑을 말할 거예요. 층층이 보통돌과 지붕돌로만 이뤄진 석가탑보다는 다보탑이 화려하니까요. 그래선지 두 탑 중에서 다보탑 앞에 서있는 관광객이 더 많았어요. 화려하기 때문에 동전에도 새겨졌겠지요.
하지만 저는 석가탑에 더 눈길이 가네요. 진정한 석탑의 아름다움은 석가탑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고, 다보탑에 비해 적은 시선을 받는 석가탑이 안타깝기 때문이예요.

다보탑은 엄밀히 말하면, 돌 재료로 만들어낸 목탑이예요. 다보탑도 아름답지만, 진정한 석탑만을 놓고 보자면 석가탑만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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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가탑. 뒤로 다보탑이 보이네요


익산 미륵사지탑, 부여 정림사지탑, 분황사탑, 감은사지 탑, 고선사지 탑 등 우리가 한번쯤은 보거나 들어봤을 이전의 탑의 모습들이 석가탑에 와서 완성되었어요. 초기의 탑은 크고 웅장한 모습이었지만 갈수록 작아지고 맵시 있게 변화하면서, 적절한 크기에 조화로움까지 겸비한 '미인'이 탄생한 것이죠.

Posted by 밝은 구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