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전 유죄, 유전무죄!
- 영화 '홀리데이'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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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홀리데이' 포스터 사진
ⓒ 최성우
지난 겨울, 서울극장에서 영화 <홀리데이>
를 보았었다. 영화 포스터의, 이성재의 매끈
한 몸매와 덥수룩한 수염. 그리고 영화의 배
경이 되는 88년의 탈주 인질극. 그것이 이 영화 보기 전의 느낌이었다.

어렸을 때 그 사건을 텔레비전에서 중계했던 기억이 난다. 일요일 한낮 창문 철망 사이로 보이던 인질범의 모습. 금세 소탕이 되었고, 그것으로 잘된 것이라고 그땐 생각했다.

영화가 개봉된 전후에야, 이 사건이 팍팍한 현실 속에서 지강헌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에서 나온 거구나 하고 생각을 했다. 그때는 군사정권 때가 아닌가.

88올림픽을 앞두고 거류지를 정화한다는 명목으로 일방적으로 용역 깡패를 동원하여 판자촌 사람들을 몰아내는 일을 서슴지 않던 현실. 88올림픽 개최가 애초, 신군부의 권위 유지와 정당화를 위해서였음을 생각한다면 그러한 행위는 어쩌면 그들로서는 당연했을지도 모르겠다.

철거촌의 현실은 드라마로 언젠가 보았던 기억이 난다. 용역 깡패와 굴착기가 몰려와 집을 부수는 중에 굴착기에 압사한 한 어린아이의 운명. 판자촌 사람들이 쫓겨나 이래저래 돌아다니던 중에 정 살 곳이 없어 땅속에 굴을 파고 들어가 살다가 비로 무너지면서 죽고 다치고 했던 현실.

영화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 지강헌이 인질극을 벌이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히 보여주고 있다. 지강헌을 연기한 이성재의 눈빛과 교도소 부소장(김안석)을 연기한 최민수의 카리스마는 영화 속에서 빛을 발한다.

다만, 영화는 최민수 한 개인에게 악역을 지나치게 떠맡기는 것 같다. 철거과정에서 지강헌의 동생을 죽이는 것도 최민수였고, 지강헌의 교도소 부소장도 최민수였고, 지강헌의 인질극을 지휘(?)하는 것도 최민수였다. 사실 이것은 지강헌 대 김안석의 싸움이 아닌, 지강헌 대 팍팍한 사회 현실과의 싸움인데. 개인 대 개인의 싸움으로 치환시켜 버린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악역이 최민수밖에 없었는가?

'유전무죄, 유전무죄'라 외치며 절규하는 지강헌의 현실은, 지금과 얼마나 다른가 싶다. 오늘, 두산 일가가 집행유예되었단 뉴스를 들었다. 삼성이 저지른 잘못은 8000억 원을 사회에 기부하는 것으로 매듭짓는다고 한다. 하지만, 돈이 없는 보통 사람들은 구속 수사 되기 일쑤인 현실에서 괴리감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나마 영화에서 말하는 것처럼 '보호감호법'이 작년 6월에 사라진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할까. 영화를 보고 나오는 마음은 막막했다.

p.s. 1.) 배급사인 롯데 시네마와 상영극장인 CGV와의 마찰로 영화의 상영이 중단될 뻔했던 일이 있었다. 이는 영화 바깥에서의 배급사와 극장 사이 알력을 보여주는 또 다른 현실을 보여주는 예가 아닌지.

p.s. 2.) 영화에서는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인질극 종반에 LP로 틀어놓는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실제 사건 때에는 지강헌이 테이프를 경찰로부터 가져왔다고 한다. 'holiday'라는 말처럼 그들이 진정 원했던 것은 이 현실로부터의 '휴가', '자유'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배경음악만으로는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떼치기 어려웠다. 그만큼 이전의 <인정사정..>의 기억이 강렬한 탓일까.
 
 
오마이뉴스에 올렸던 기사입니다
 
Posted by 밝은 구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