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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네이버


어제가 중복이었다고 한다. 이제 더위도 한가운데 있는것인가보다.
더위에 사람들이 지쳐갈 때 찾게 되는 곳은 삼계탕집이나 보신탕집이다. 이맘때이면 닭고기나 개고기를 많이 찾곤한다. 그 중 개고기에 대해선 많은 찬반 논란이 있고, 한편 동물보호단체의 시위가 벌어지기도 한다.

몇년전, 프랑스의 유명 여배우 브리짓 바르도가 한국에서의 개고기 식용에 대해서 비난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개고기 식용에 대한 논란이 벌여졌다. 브리짓 바르도가 개 식용을 반대하는 것은 '애완 동물'인 개를 도축하는 것에 대한 혐오에서 비롯된 것 같다. 더불어 동양의 한 나라에서 '감히' 개를 먹는 데에 오리엔탈리즘적인 혐오가 섞여있는 게 아닐지.

'애완'을 목적으로 길러지는 개와 다른 목적하에 길러지는 개는 구분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브리짓에게 개는 단지 '애완용'일 뿐이지만, 대한민국의 일반 서민에게는 집을 지키는 파수꾼임과 동시에, 애완용, 또는 식용인 것이다. 오랜 시간동안 소, 돼지와 더불어 보약조차 구하기 힘들었던 서민들의 고프고 지친 속을 위로해 주었던 존재가 바로 개였다.

동물보호단체의 개 식용 반대는 동물의 생명을 함부로 해하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인 것 같다. 개패듯 패서 때려잡는 잔학성을 생각한다면 일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 단체도 잔학성만을 생각한 나머지, 개를 식용으로 삼아왔던 전통적 식생활 자체를 쉽게 부정하는 건 아닌가 싶다. 고달팠던 앞선 세대의 먹거리로 기능하여온 개의 식용 자체를 이들 또한 자신의 시각에서 쉽사리 재단해버리는 건 아닌지. 나와 다른 식생활, 삶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비판을 던지는 일종의 '폭력'을 행하는 건 아닐까.

개 도축의 '잔학성'을 비판하고자 한다면, 개 도축 자체를 반대하기 보다 개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 도축하라고 주장해야 할 일이다.
개 사육 및 도축 과정에서의 '비위생성'을 비판하고자 한다면, 개 도축 반대가 아닌, 사육-도축 과정에서의 당국의 철저한 관리-검역을 촉구해야 할 일이다.
개 도축이 인위적으로 생명체의 생명을 끊는 것임을 비판하고자 한다면, 개 이외의 소, 돼지, 닭 등 모든 가축의 육식을 하지 않고 채식을 할 일이다. 이 또한 그 자신이 지키고 살면 될 일이 아닐까.

이 글을 쓰는 나도 개고기를 먹지 못한다. 아마 어린 시절 키웠던 강아지 '베쓰', '곰돌이'에 대한 추억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개를 못먹는다고 식용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자신과는 다른 식생활을 가진 사람에 대한 비판이 자칫하면 일면적인 삶의 방식을 강요하는 '폭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식생활은 삶의 양식으로서 쉽게 바뀌기 힘들다. 때문에 '전통'이란 이름으로 오래 이어져 온 것이리라.
동남아에서 우리가 혐오하는 바퀴벌레를, 프랑스와 중국에서 우리가 식용으로 꺼리는 달팽이와 원숭이 골을 식용으로 삼는 것만큼이나 우리는 서양인들이 식용으로 꺼리는 개, 오징어를 식용으로 삼고 있다. 한 동물의 생명을 잔혹하게 해하는 것은 문제이겠지만, 그렇다고 한 지역, 한 국가의 '문화적 다양성'을 무시하는 것은 더 큰 문제가 아닌가 싶다.

Posted by 밝은 구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