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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08 영화 '오래된 정원'에서 느껴진 시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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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래된 정원'


영화를 본지 한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야 긁적여본다.
영화 '오래된 정원'은 황석영의 동명 소설을 영화한 것이라고 하는데, 아쉽게도 소설은 읽어보지 못했었다.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영화화 되는 것처럼, 소설의 영화화는 요즘 영화계의 하나의 흐름이 아닌가 싶다.

영화의 큰 내용은, 학생운동을 하다 숨어 들어온 오현우(지진희 분)가 시골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한윤희(염정아 분)의 거처로 도피하게 되면서 둘이 만든 사랑과 그 이후의 이야기로 이뤄진다. 6개월간의 젊은 청춘남녀의 사랑과 그 이후의 기나긴 이별.. 그리고 아픔.
학생 운동을 하던 오현우에 대한 설명에 영화는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만, 오현우가 잡혀 들어간 이후의 한윤희를 둘러싼 이야기도 적잖게 들려주고 있다. 결국, 이 영화는 오현우와 한윤희의 사랑과 그 후기를 통해 시대현실을 간접적으로 조망하는 셈이다.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과 1986년의 건대항쟁, 그리고 당시 공장으로 숨어들어가 노동운동의 불씨가 된 대학생 선배들의 이야기 등이 그 배경이다. 또한 학생운동의 이면에도 시선을 멈추지 않는다.

90년대 후반의 학번인 나로선, 80년대의 그 시간이 아득하고,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대상일 뿐이다. 87년의 금강산 댐 사건과 그 해 겨울의 대선, 그리고 88년 5공 청문회와 전두환이 백담사로 들어가던 사건이 파편화된 기억으로 남아있는 내게... 이는 머리가 커지면서 비로소 듣고 고민할 수 있었던 것들이었다. 중학생 시절이던 90년대 초반, 노태우 정권의 공안정국을 보았고 막 새내기이던 96년 연세대 사태를 보았다. 90년대 학번은 자유분방하며 非규정적인  'X세대'라고는 하지만, 사회현실에도 관심이 적잖다는 점에서 기존 80년대의 영향에서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1995년 보라매 공원에 공부하러 갔다가 보았던,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보내자던 선배들의 시위를 기억한다) 인터넷 세대(N세대)이자 취업준비에 몰두하는 지금의 2000년대 학번과는 다르다 할 수 있는 , 80년대와 2000년대 학번의 확실히 '끼인' 세대가 90년대 학번이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

영화속의 장면은 생날 것 그대로였다. 가슴아프지만, 이는 20여년전의 사실이었다는 것. 만일 십년이란 나이를 더 당겨 먹어,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난 과연 어떠했을까 싶었다. 목숨을 내놓고 용기있게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젊은이가 있었지만, 한편 겁을 먹고 실천을 주저하는 젊은이도 있었다는 것. 외면하고 아예 발길을 돌리지 않는 이도 있었을테고...
그럼에도 변치않는 건, 당시의 시대상황이 젊은이들을 그리 내몰았단 점일게다. 그 시대가 아니었다면, 오현우와 한윤희도 오래도록 사랑을 가꿀 수 있지 않았을까. 사랑하는 것마저도 웬지 시대의 '죄인'이 되는 듯한 미안함이 드는 상황에서 말이다. 때문에 그 시대를 치열하게 보내었던 선배들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참으로 억울할 수 있겠다 싶었다.

오현우는 한윤희와 헤어진 후 붙잡혀 17년간을 감옥에서 복역한다. 한윤희는 그 새 세상을 떠나 없고.. 그 시간에 오현우와 한윤희의 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있었다. 자유분방해 보이는 차림의 그 아이는, 과거와는 또다른 '시대'와 '미래'를 상징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암울한 시대상은 이제 또다른 세대에 의해 종언을 맞이한다는 느낌이었다. 만약 과거의 그 시대상황만 아니었다면, 마지막에 화면을 가득 채운 한윤희의 그림처럼, 온 가족이 한 화폭 안에 모여 정답게 웃고 있었을텐데... 마지막에 나즈막히 울려오던 '사노라면'이 참으로 쓸쓸했다.

과거는 그저 과거일 뿐인 것이 아니다. 영화를 보면서 '예전엔 이랬었지...'하며 회상하는 느낌을 갖기 쉬울 것도 같다. 하지만 영화가 주목하는 건, 그 시대에도 삶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다는 것.
단지 그 삶과 사랑은 시대에 의해 왜곡되고 파괴되어 갔음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그 산물은 바로 아쉬움이었다. 아마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이들이라면 그 아쉬움은 마음에 더욱 진하게 드리워지지 않았을까.

p.s.) 오현우 역의 지진희는 인권 영화 '여섯개의 시선'에도 얼굴을 내밀었던 배우이다. 이 영화에서도 지진희를 보게 되면서, 드라마 '대장금'에서의 잘생긴 '종사관 나으리'의 이미지를 벗어나 무언가 '생각이 있는 배우'란 느낌을 갖게 되었다.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오래된 정원', '홀리데이(지강헌 사건)', 올  5월에 개봉될 예정인 '화려한 휴가(5.18을 배경으로 한 영화)' 등 시대성을 드러내거나 사회성을 갖춘 영화가 요즘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이전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실미도', '공동경비구역 JSA'처럼, 시대에 대한 영화의 뜨거운 관심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게다. 영화가 보여주는 시대성, 사회성과 대중의 호응은 때론 사회에 자그마한 파장을 미치기도 한다.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사형제를 둘러싼 담론을 밖으로 표출시킨 것처럼.
앞으로도 이러한 영화가 많이 나오게 되길 소망해본다.


(한겨레 필넷에서 기사에 올랐습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189349.html

Posted by 밝은 구름 :